서울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엄마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시던 엄마는 책이나 한 번 왕창 읽어보자며, 매일매일 시간만 나면 책을 읽으신다. 며칠 전, 엄마가 읽어보라고, 느끼는 것이 많을 것 같다며 책을 한 권 주셨다.
책 띠지에 적혀있었다.
당신 이마에 손을 얹는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삶에 지치고 외로운 당신에게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내가 힘들어 보였던걸까?
책을 조금 읽어보니 이 책은 마음 수련, 명상하기 좋은 책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아침 독서를 시작해볼까 싶었는데(새벽 독서를 하고 싶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책 분위기가 아침에 읽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다.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다.
p29 시골의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묶었던 끈은 칼이나 가위로 싹둑 자르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손으로 풀라고 이르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다름 아니었으며, 매사에 정성을 들이라는 산 가르침이기도 했다.
p30 결국 인생은 인내심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의 문제임을 아버지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우리 엄마도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더랬다. 지금까지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작가의 말처럼 그냥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뭔가 마음이 찜찜해서..) 그냥 미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엄마의 말에는 깊은 뜻이 었었구나.. 싶다.
p52 그거 알아요? 정말 뭔가에 정신을 쏟으면 눈물이 나는 거? ··· 내 안에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할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감동한 거였어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든.
그것은 몰입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듣는 사람의 피까지 뜨겁게 만드는 열정.
눈물이 날만큼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도 찾을 수 있을까..?
p62 "그래, 별일 없어도 그런 날이 있지.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고, 심장이 유난히 쿵쾅거리고 머리에 열도 나는 것 같은 날이. 하지만 알고 있잖아. 그런 순간도 곧 지나간다는 거. 그러니 힘 내. 난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참 좋더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잖아."
가끔 타인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이렇게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볼까. 힘 내라고. 잘 하고 있다고. 잘 될 거라고.
p101 애초부터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감정에 따라 혼자만의 법정에서 유죄, 무죄를 따졌던 것이다.
p143 우리의 감정도 하나의 인격체와 마찬가지여서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면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바깥(책장에 흠집을 낸 아저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불쾌해 하는 내 마음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p144 화의 실체를 바라보기에 성공하면 마음의 에너지를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쪽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생산적인 방향에 쓸 수 있다.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하다. 문제는 그 화살이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들에게 향한다는 사실이다. 뒤돌아 후회할 걸 알면서도.. 마음 속으로 수십 번을 삭혀도.. 튀어나오는 화와 짜증 섞인 말.. 후회하고 반성해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매일.. 가장 힘든건 이러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화를 다스리는 일.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너무 어렵다.
며칠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오은영 박사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화가 날 때 숨을 15초 정도 참으면 화의 수치(LV1-10, LV10에 도달하면 빵 터진다.)를 몇 단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내 문제를 알고 있었고, 책도 읽었고, 방법도 알았으니 실천해보자 하고 몇 번 해봤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p208 문제는 열에 해당하는 노력을 하고 백의 결과를 바라는 욕심이 아닐까. 인생의 괴로움은 자신이 뿌린 것보다 과도한 결과를 바라는 데서 온다.
그렇다.. 열도 안 되는 노력을 해놓고.. 나란 사람.. 나 원 참이다.
작가의 생각이 나의 마음에 가볍지 않게 와닿았다. 회피, 핑계, 게으름으로 똘똘 뭉쳐진 나에게 "여보세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한다. 많은 반성과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이미 엄마께 돌려드렸지만, 적어놓은 문장들을 되새기며 반성과 다짐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 이 책은 2017년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제목으로 개정 출판되었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상헌의 생산적 책읽기 (0) | 2021.03.07 |
---|---|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박연선 (0) | 2021.03.05 |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중국어 [엄마! 나는 정말 화가 나요!] 3편 (0) | 2021.03.01 |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중국어 [엄마! 나는 정말 화가 나요!] 2편 (0) | 2021.02.27 |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중국어 [엄마! 나는 정말 화가 나요!] 1편 (0) | 2021.02.26 |
댓글